
이스라엘이 본격 군사활동 확대에 나서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향해 ‘가자지구 영토 접수’ 의사를 공식화했으며 예멘의 친이란 반군(후티)를 겨냥한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전 세계 반미 및 반이스라엘 세력과 그 배후인 이란에 대해 끝까지 갈 것을 천명한 셈이다. 작년 헤즈볼라가 수천 개 무선기 동시 폭발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하마스도 약화된 이래 유일하게 건재한 ‘저항의 축’ 구성원은 후티뿐이다.
5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 전시내각이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재 회의에서 작전명 ‘기드온의 전차’ 계획을 만장일치 승인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 및 영토 유지 구상이 포함된 내용이다. 기드온이란 구약성서의 인물명이며 ‘파괴자’ ‘위대한 전사’를 의미한다. 네타냐후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 글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스라엘군이)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작전 계획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폭격을 거듭하면서도 지상군이 주요 회랑 근처의 완충 지역에 주둔했다가 하마스 거점을 공격한 뒤 철수하는 식이었다. 새 작전 계획이 실행되면 빼앗은 곳을 계속 점령함으로써 하마스의 재건을 원천 봉쇄하게 된다. 작전 확대를 위해 이스라엘 내각이 수천 명의 예비군 동원을 승인한 상태이며 동원 병력이 장기적으로 수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가자지구 곳곳에서 여러 여단 투입이 예정돼 있다는 것도 익명의 당국자에 의해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이날 후티가 장악한 예멘 서부 해안 도시 호데이다의 항구에도 2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포탄 50발을 퍼부었고, 후티 측 보건부 피해 발표를 빌어 AP통신이 최소 1명 사망 35명 부상 소식을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후티 타격은 약 4개월 만이며 3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후티 공습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이스라엘의 군사활동 확대에 대해 내부 강경파 달래기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근절 실패에 실망한 일부 강성 지지층용 메시지”로 보며 “전쟁 국면을 고조시키는 게 국내 정치에 도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날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향한 미사일 공격 보복 차원으로 진행된 게 대(對)후티 공습이었다. 대외적으론 이란과 역내 곳곳의 친이란 세력에 보내는 억제 메시지 성격이 강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2000㎞ 정도 떨어진 곳까지 즉각 보복 가능한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한다는 점을 이번 보복 공격을 통해 재확인했다. 가자지구 점령을 위한 군사작전의 개시를 앞두고 이른바 자칭 ‘저항의 축’인 친이란 군사 네트워크에 개입을 자제하라는 무력시위이기도 한 셈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 확대란 국내 정치적 필요를 넘어 외교 일정까지 고려한 치밀한 결정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트럼프의 이달 중순 중동 방문에 맞춰 하마스 측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라는 해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이전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인질 석방 및 휴전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새로운 공격이 향후 2주간 점진 개시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선 “이스라엘은 신중하게 시기를 조율해 가자지구 점령 계획을 발표했다”며 “가자지구 내 죽음과 파괴 장면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체류를 외교적으로 매우 미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짚었다. 군사작전 확대의 실질적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스라엘군 정보 책임자로 수년간 복무했던 타미르 헤이만은 NYT 인터뷰에서 1년 6개월째인 전쟁 장기화로 압도적 군사력를 통한 하마스 압박 효과가 소용 없어진 상태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란 역시 이스라엘의 최근 행보를 ‘미국 끌어들이기’로 규정하며 견제에 나섰다. 같은 날 AFP통신이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의 경고성 엑스 글을 소개했다. 아락치는 네타냐후를 향해 “미국에 직접 간섭해 중동의 또 다른 재앙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란에 대해선 어떤 오판도 금물”이라고 했다. 이어 “(네타냐후가) 뻔뻔스럽게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외교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며 “네타냐후의 가자 학살에 대한 치명적 지원과 그를 위한 예멘 대리전으로 미국인들이 얻을 게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는 전날 후티의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 미사일 공격에 네타냐후가 트럼프를 언급하며 대(對)이란 보복을 다짐한 것에 따른 반응이었다. 네타냐후는 이날 엑스에 ‘후티의 추가 공격이 있으면 그 배후인 이란에 책임을 묻겠다’는 트럼프의 3월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후티가 주인으로 떠받드는 이란에 대응하겠다’며 전투기 20대로 예멘의 항구를 공습한 것이었다. 현 사태가 이란 핵협상에 미칠 영향 또한 세계적 관심사다.
미국·이란은 지난달 12일을 시작으로 세 차례 회담을 진행했지만 이달 3일 잠정 예정됐던 4차 협상이 연기되는 등 주요 쟁점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란 측에선 핵무기 아닌 민간용도의 우라늄 개발 인정을 요구하며 탄도미사일은 협상 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네타냐후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능력 완전 제거와 탄도미사일 생산 저지 방안 등을 협상에서 다뤄야 한다고 훈수해 이란이 누차 불쾌감을 표시했다. 트럼프는 4일 공개된 NBC방송 인터뷰에서 ‘이란 핵프로그램 완전 해체’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원자력 발전용 개발에 한해선 “귀를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자세를 취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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