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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왔습니다] <57> 대남 침투 훈련의 마지막 과정… 모의 합동훈련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2 06:30: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해상침투 합동 모의훈련
 
남파 공작원들이 대남 침투를 앞두고 진행하는 훈련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해상침투 합동 모의 훈련이다. 이 훈련은 공작조를 남한의 해안까지 안내해 주는 전투원(안내원)들과 이들의 안내를 받아 남한에 침투할 공작원들이 해상을 통해 어떻게 침투할 것인지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 등을 숙지하고 손발을 맞춰 보는 과정이다.
 
통상적으로 공작원은 해상 침투를 위해 수영과 잠수 훈련을 하지만, 남한에 침투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로 남한 해상을 통한 침투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투원들로부터 구체적인 침투 절차와 방법 등을 전수받고 그들과의 합동 훈련을 통해 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남한 침투 및 공작 관련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른 4월 말경, 나와 조장 권중현은 소속 부서인 중앙당 사회문화부 이원국 부부장과 과장·부과장·지도원 등과 함께 해상 침투 합동 모의 훈련을 위해 남포로 향했다.
 
서해 무인도에서 해상침투 방법과 절차 실습
 
우리 일행은 승용차 2대로 남포 갑문까지 이동한 다음 갑문 밖 해상에 대기하고 있던 소형 선박을 타고 공작조를 안내해 줄 전투원들이 훈련하고 있는 서해 무인도로 이동했다. 무인도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커다란 바위가 많고 넓은 백사장이 있어 흡사 제주도 해안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이 무인도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해 대기하고 있던 중앙당 작전부 부부장과 과장·지도원 등 고위 간부들과 남포연락소 소장, 당비서, 그리고 실제로 우리를 제주도까지 안내해 줄 전투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어 남포연락소를 관장하는 중앙당 작전부 부부장이 사회문화부 이원국 부부장과 과장·부과장·지도원, 그리고 나와 조장 권중현에게 우리 공작조를 제주도까지 안내할 전투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당시 나와 권중현을 제주도까지 안내해 줄 전투원은 조장과 조원, 저격수 등 3명이었다. 그 가운데 저격수는 전혀 모를 인물이었고 조장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 16기 졸업생이라고 했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졸업해 안면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안내조의 조원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시절 나와 1중대에서 3년간 같이 생활했던 1년 선배, 즉 18기 졸업생 류명수였다. 대학 시절 나와 비교적 가깝게 지냈던 평양 출신의 류명수는 나를 특별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난생처음 본 반(半)잠수정
 
나와 권중현은 전투원들의 안내로 우리가 제주도에 침투할 때 사용할 선박이 정박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 특이한 모양의 선박은 반쯤 물에 잠긴 상태로 정박해 있었는데, 내가 공작교육과 훈련을 받는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잠수정이었다.
 
내가 남한 정보기관에서 생활하면서 보니 한국에서는 비밀 서류나 장비를 보여준 다음 보안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보안 각서도 작성하는 등 사후 조치를 취하지만, 북한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불필요한 사람에게는 관련 문서나 장비를 아예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보안을 유지한다.
 
내가 이때 반잠수정을 처음 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반잠수정을 보여준 것은 내가 직접 그것을 타고 남한에 침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리 오랫동안 공작교육과 훈련을 받은 공작원이라도 그가 현실적으로 대남 침투 및 공작에 투입되지 않는 한 반잠수정과 같은 실제 침투 장비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반잠수정에 3대의 미국산 고속엔진을 장착해 바다가 잔잔한 상황에서는 최고 60노트까지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육지와 가까운 해안에서는 물에 반쯤 잠겨 반잠수로 이동하므로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는다며 자랑했다. 그런 다음 우리를 반잠수정에 태우고 고속으로 무인도를 한 바퀴 돌면서 성능을 과시했다.
 
 
▲ 1998년 12월17일 무월광기(無月光期) 전남 여수시 돌산읍 임포리 앞 해안에 북한군 6명이 탑승한 반잠수정이 침투하다 우리 군에 발각, 격침돼 인양됐다. 격침된 반잠수정은 길이 8.7m에 무게가 5t 정도였다. 연합뉴스
 
 
잠수 훈련 때와는 다른 장비들… 처음 입어 본 방수복
 
무인도에서 전투원들이 마련한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나와 권중현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중앙당 대남공작부서 부부장 2, 과장 2, 연락소 소장과 당비서 등 고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내조와 해상침투를 위한 전술 토의를 한 다음 함께 합동훈련에 들어갔다.
 
안내원들은 먼저 나와 권중현에게 해상으로 침투할 때 착용할 방수복과 납 벨트, 잠수용 신발과 오리발, 잠수 모자와 수경(면경), 공기통과 스노쿨 등을 제공한 후 착용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 가운데 다른 장비들은 이미 잠수 훈련 과정에 사용해 본 것들이어서 낯설지 않았지만 방수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방수복은 얇은 천에 고무 코팅을 한 원단으로 방수복 안에 입은 옷이 젖지 않게 우주복 모양으로 만든 일종의 덧옷이다. 공작원들은 평소에 잠수 훈련을 할 때 잠수복(슈트)을 입기 때문에 방수복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나 역시 방수복이 처음이었다.
 
나와 권중현은 전투원들의 설명과 도움을 받아 가며 방수복을 입고 그 안에 차 있는 공기를 빼낸 다음 물속에 들어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해 보면서 혼자서도 방수복을 착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중추진기 잡고 이동하며 소통하는 방법 훈련
 
또 다른 침투 장비인 수중추진기(수중스쿠터)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수중추진기가 물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는지, 수중추진기를 잡고 이동할 때 각자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어디에 정하고 어느 곳을 잡을 것인지, 상호 간의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전투원(3)들과 공작원(2)들이 침투 과정에서 분산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바닷속에 들어가 그들이 이미 설명해 준대로 위치를 정하고 가는 줄로 손목을 서로 묶어 분리되지 않게 한 다음 수중 추진기를 잡고 이동하면서 손목에 묶은 줄을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상호 소통하는 훈련을 진행하였다.
 
비좁은 반잠수정 안에 4명이 구겨 타고 이동하는 훈련
 
그런 다음 나와 권중현을 반잠수정으로 데리고 가 우리가 탑승할 선실 위치를 알려 주고 탑승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그런 다음 실제로 선실에 들어가 앉아 보게 했는데, 2명이 들어가도 좁은 공간에 4명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침투 과정에 반잠수정을 타고 서귀포 해안을 향해 4~5시간 동안 이동했는데, 선실이 너무 좁고 바깥의 공기가 내부로 원활하게 들어오지 않아 너무도 답답해 죽을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와 같이 설명과 함께 간단한 연습을 진행한 다음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안내조와 함께 수중추진기를 이용해 해안으로 침투하는 훈련을 3회 정도 실시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무인도 주변에서 실전과 똑같이 야간 해상침투 훈련을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먼저 반잠수정의 정해진 선실에 승선해 무인도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다음 방수복과 잠수장비를 착용하고 바닷물에 입수한다. 그런 다음 수중추진기를 이용해 해안으로 접근해 바위를 타고 상륙하는 방식으로 침투 동작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훈련 마무리는 반잠수정 타고 이동해 해안으로 침투해 상륙하는 것
 
이렇게 무인도에서 하루 동안 해상침투 훈련을 반복적으로 진행하면서 해상침투 절차와 방법을 완벽하게 숙지한 다음 둘째 날에는 반잠수정을 타고 우리가 훈련했던 무인도를 벗어나 한참 동안 이동한 후 육지인 남포 해안으로 침투해 상륙하는 방식으로 침투 모의 합동훈련을 마무리했다.
 
아울러 마지막 날 저녁에는 남포연락소에서 준비한 연회에 초대돼 남포 지역의 특산물인 대합(백합) 조개로 만든 갖가지 음식을 맛보았다.
 
액션플랜… 대남 침투 및 공작활동 계획의 최종 단계
 
청진에서의 통신 훈련과 실탄 사격 훈련, 침투 후 내륙에서의 이동 훈련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포 연락소 안내조와의 침투 모의 합동 훈련을 마치고 초대소로 복귀한 나와 권중현은 대남 침투 및 공작 활동 계획, 즉 액션플랜을 완성하는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
 
공작 활동 계획은 공작조 조장과 조원이 신분을 어떻게 위장할 것인지, 북한과의 통신 연락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각각 연구해 초보적인 계획을 수립한 다음 조장과 조원이 토의해 보완한다. 이 작업은 연초부터 해 오던 것이어서 2월 하순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담당 팀장인 사회문화부 부과장 및 지도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보완하는 1차 검토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3월 초순에 끝냈다. 부과장 단계에서 공작 활동 계획 검토가 끝난 후에는 담당 과장과의 토론을 통해 2차로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도 3월 중순에 마무리했다.
 
계급장 떼고’ 끝장 토론… 액션플랜 최종 완성
 
마지막으로 담당 부부장의 입회하에 과장과 부과장, 지도원 등 부서 간부들이 모두 참석해 남파 공작조의 적구(敵區) 활동계획(액션플랜)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을 한다. 이때에는 말 그대로 부부장과 과장, 부과장 등 고위 간부들과 계급장 떼고끝장토론 방식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세부적으로 계획을 완성한다
 
나와 권중현은 3월 하순부터 담당 부부장과의 토론을 통해 공작 활동 계획 작성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우리를 침투 지역까지 안내해 줄 전투원들과의 침투 모의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5월 초순까지 담당 부부장, 과장, 부과장 등 고위 간부들과의 토론을 통해 공작 활동 계획 작성을 완료한 후 복창서 작성 작업에 들어갔다. 복창서는 나와 조장 권중현이 북한을 떠난 후부터 남한에 침투해 공작 임무를 수행한 다음 북한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의 전 과정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메모해 제출하는 것이다. 당시 내가 자필로 작성했던 복창서는 300~400페이지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한국에서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아버지 혼자 생활하셨을 텐데, 장을 보고 음식을 해서 식사하던 그 모든 순간순간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제나 온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던 제가 군에 입대한 후 훈련소에서 낯선 동기들과 첫 식사를 했을 때, 사실 저는 그때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웠거든요.
 
아버지 :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너희 엄마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약 3개월 정도 혼자 생활했는데, 그때는 특별히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어. 특히 내 경우에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15년간 공작원 생활을 할 때 이미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생활하거나 동료들과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너희들보다는 덜했을 거야.
 
그럼에도 한국에서 살면서 장을 보고 음식을 해 먹는 순간순간은 정말 북한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고,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어.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죽을 때까지 사회 또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갓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로 인해 부모님은 물론 동생들까지 모두 숙청당했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리움과 함께 죄책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어. 그땐 잘 몰랐는데 나이를 더 먹을수록 오히려 예전보다 부모님과 동생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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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진   2025-06-05 14:16 수정          삭제 이번이 끝이요? 후속 연재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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