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나개(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개가 사람을 공격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것은 순전히 주인 탓이라는 것인데 사실 여러 마리를 키워도 특별히 나쁜 개는 있다. 방송은 나쁜 개가 수의사 선생님의 훈육으로 착한 개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아 낸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소년들의 왜곡된 자존심을 그린다. 자존심을 다쳤다고 생각한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다. 좋은 부모 밑에도 나쁜 아이는 있는 법이다.
나쁜 아이, 나쁜 개가 있는 것처럼 나쁜 부모도 있다. 대만 작가 위첸은 신간 ‘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도 있지만 그럴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할 의지와 능력도 없는 부모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나쁜 엄마의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 ‘더 글로리’ 문동은(송혜교)의 엄마 정미희(박지아)가 있다. 그는 자식과 여인숙에 거주하면서 자식에게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자신의 쾌락에만 집중한다.
동은이 학교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고도 연진의 엄마와 담임 교사가 내민 돈에 혹해 동은의 자퇴 사유를 ‘부적응’으로 바꾸는 데 동의하며 자식을 버려 두고 남자와 야반도주하는 일도 태연하게 저지른다.

위첸은 ‘부모라면 자기 자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미신 때문에 부모에게 상처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기 이야기를 밖에 나가서 하기 어려워한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부정당하고 비난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회적 연극에 동참하는 이유다.
성장해서도 마찬가지다. 아픔을 이야기해봤자 ‘부모도 사람’이라며 부모를 두둔하고 과거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을 금기시한다. 더 이야기했다간 철없는 사람, 덜 자란 어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아이도 성인이나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부당한 대우를 전부 감내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상처를 당연하게 여기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저자는 효심이 깊다고 칭찬받는 딸들에 주목한다. 그들은 사랑 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뿐 아니라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게 일상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들은 그들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부모와 상대해야 하며 노력 없이 항상 많은 몫을 챙겨 가는 남자 형제를 상대해야 한다.
저자는 “사랑이 본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 즉 자기 자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개체성이 서로 충돌할 때도 여전히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시된다”고 말한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보살핌·책임·존중·이해로 구성돼 있고,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완전한 사랑이 된다. 이는 생각보다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이고, 꾸준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좋은 부모는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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