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모처럼 호텔업계와 식음료업계가 호황을 맞고 있다. 어느 때보다 관련 사업에 종사할 전문인력의 충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한호전)는 호텔외식조리·스시·제과제빵·디저트공예·소믈리에·바리스타 및 관광경영과 카지노딜러 등 관광 전반에 관한 교육을 시행한다.
육광심 한호전 이사장은 평생을 교육 사업에 몸 바쳐 온 인물로 업계의 레전드로 불린다. 보슬비가 가을의 속살까지 촉촉히 적시는 10월 어느 날 오후 그를 만나기 위해 안산 중앙역 인근의 한호전을 방문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그곳, 한호전은 어떤 곳일까?
관련기관 통해 학점 취득 가능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한호전)은 평생교육법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학점을 통해 학위를 취득한다는 점에서 일반대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일 학교가 아닌 관련기관을 통해 학점 취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있죠.”
한호전에서는 수능이 아닌 면접을 통해 입학 여부가 결정된다. 형태는 면접이지만 사실상의 적성검사 성격을 띠고 있다. TV에 등장하는 화려한 셰프의 이미지와 달리 실전에서 정말 적성이 맞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든 분야가 요리이기 때문이다.
취업률을 묻는 질문에 육 이사장은 “한호전 나왔다고 하면 각계에서 모셔간다”는 대답을 들려 주었다. 취업 걱정은 없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각 대학의 지원자가 줄고 있는 이즈음에도 한호전은 학생을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가까운 곳에 있는 학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안산은 외국인의 비중이 많음에도 이들을 학생으로 받는 데는 몇 가지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 대다수가 비전문취업(E-9) 비자 소지자입니다. E-9 비자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체류 기간이 최장 4년10개월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전문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반면 숙련기능인력비자(E-7)는 체류 기간의 상한이 없다. 한호전을 글로벌 대학으로 키우고 외국인 인력을 전문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해선 비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학업을 마친 학생들에게 E-7 비자를 발급한다면 관광업계 인력 충원에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할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또 있다.
“외국의 경우 기술학교와 이론을 가르치는 학교가 분리돼 있습니다. 한국은 이 구분이 없다 보니 최상급 교육기관인 대학이 취업 학원처럼 되어버렸어요.”
1990년대 말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한호전에 바리스타 위탁 교육을 맡겼다. 한호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국내 유수 카페에서 바리스타 위탁 교육을 의뢰해 왔다. 육 이사장은 한호전이 한국의 카페 전성시대를 불러오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이런 실용교육은 전문학교에서 떠맡고 대학은 고등교육법 제28조에 따라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고등교육 기관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호텔학교가 중요한 이유

육 이사장은 요리학원에서 출발해 국내에 조리전문대학을 도입한 업계의 신화 같은 존재다. 1989년에 설립된 한호전은 올해 개교 35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설립자면서 실무에 정통한 운영자인 셈이다.
“학교 설립 당시만 해도 요리사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교 이연복·정호영 교수가 TV에 출연해 셰프의 위상을 격상시키고 백종원 같은 스타 셰프가 등장하면서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호전은 요리사뿐 아니라 호텔리어 양성소로서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직영으로 운영하는 4성급의 엠블던 호텔은 학생들의 좋은 실습장이다. 400여 개 객실 가운데 200개는 기숙사로, 나머지는 일반 객실로 운영한다. 그밖에 학생들은 대형 컨벤션과 연회장·조리실습실 및 카페와 베이커리에서 다양한 현장 업무를 익힌다. 특히 카페와 베이커리는 학생이 직접 운영토록 해 수익을 배분해 주고 있다.
“세계적인 호텔관광대학은 대부분 호텔을 운영합니다. 현장을 갖고 있어야 실습도 가능하니까요. 촌사람은 도시를 두려워하고 해외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외국인을 두려워합니다. 직접 겪어봐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묵는 동안 자신이 묵고 있는 객실 정리를 책임진다. 의대로 말하면 레지던트 과정인 셈이다.
“저희 운영진도 호텔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호텔리어는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는 직종입니다. 특히 프론트데스크는 과거 큰 인기를 구가하던 직종이었으나 최근에는 밤을 새워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많다 보니 기피 직종이 되었습니다. 이에 저희는 학생을 대상으로 임금을 많이 받고 오래 근무하는 것과 임금이 조금 적더라도 적은 시간을 근무하는 것을 비교 조사하는 중입니다.”
호텔에는 자동차 부품만큼 많은 부속이 있다. 이것을 책으로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한다는 말이 있듯 일부만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큼 위험하다. 이에 한호전은 엠블던 호텔 트레이닝 북을 만들어 호텔실무형 인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외부 활동에도 열심이다. 2018년 고향인 충북 영동의 와인터널 준공 시 컨설팅에 참여한 인연으로 현재까지 다양한 조언을 이어가고 있다. 영동와인터널은 엇비슷한 와인동굴 중에서도 유독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영동와인터널의 성공 뒤에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육 이사의 심미안과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올해 한호전은 산업계 주도 청년 맞춤형 훈련 사업의 관광 분야에 선정됐다. 이 제도는 만 18~34세 청년 구직자 및 재직자가 주요 대상으로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훈련을 제공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훈련기간은 재직자의 경우 30~40시간(2~3주 내외)이, 채용예정자는 12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반도체 분야는 성균관대학교 등이, 호텔관광 분야는 한호전이 맡고 있다.
“그간 관광 분야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이번에 신설됐습니다. IT분야 못지않게 못지않게 일 경험이 필요한 분야가 관광이기 때문이죠. 국가 인력을 키워 낸다는 자심으로 최선을 다해 교육하겠습니다.”
육 이사장은 한호전의 마스코트로 카멜레온을 마음에 두고 있다. 카멜레온은 피부의 반사판을 이용해 피부를 원하는 색으로 바꿔 ‘변신의 귀재’로 불린다.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는 카멜레온처럼 한호전도 세계 관광의 흐름에 발맞춰 변신을 거듭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관광 분야가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대형 호텔들이 많이 문닫았고 호텔리어 교육에도 손을 놓아버린 시간이었죠.”
육 이사장은 어떤 흐름 속에서도 카멜레온처럼 유연하게 대처하는 교육기관으로 또 관광산업 회복기를 맞아 유능한 호텔관광인을 키워 내는 전문학교로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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